- 의류 수출국에서 남아시아 연결국가로…일본은 산업회랑, 중국은 인프라, 인도는 북동부의 바닷길을 그리고 있다 한국의 기회는 항만 건설 경쟁이 아니라 제조•전력•물류를 AX로 연결하는 데 있다

방글라데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값싼 노동력과 봉제공장이 먼저 떠오른다. 틀린 이미지는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은 지금도 전체 수출의 약 82%를 차지한다. 그런데 2025년 인구 1억7569만 명의 이 나라를 여전히 ‘가난한 의류 생산국’으로만 읽는다면 지금 벵골만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한국과 방글라데시가 지난 8월 4일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협상을 원칙적으로 타결한 것도 그래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1억7000만 명 시장의 문이 열렸다고 설명하지만, 이번 협정에는 상품관세뿐 아니라 인프라·산업·디지털 전환·에너지·공급망 협력까지 들어 있다. 방글라데시를 단순 소비시장보다 훨씬 넓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움직인 나라들이 있다.
일본은 마타바리에 단순한 항구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니다. 수심 16m의 심해항에 최대 8000TEU급 선박이 들어오고, 1단계 컨테이너 처리능력만 연 70만TEU로 설계됐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2단계 항만개발에만 1053억 엔이 넘는 차관을 제공했고, 사업 목적 자체를 방글라데시의 화물처리 능력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물류 연결성 강화라고 명시했다. 일본이 보고 있는 것은 항구가 아니라 항구에서 시작되는 산업회랑이다.
인도는 다른 계산을 한다. 치타공과 몽글라항을 이용해 자국 북동부로 화물을 보내는 길을 이미 제도화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잇는 내륙수운협정 노선에서는 2023~2024 회계연도 약 468만t의 화물이 움직였다. 실리구리 회랑을 우회해 아삼·트리푸라·메갈라야 같은 북동부 지역을 바다로 끌어내리는 길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방글라데시 안에서만 사업을 보지 않는다. 2026년에는 치타공 일대의 중국 경제·산업구역 인프라에 약 3억400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를 통해 5억 달러 이상의 투자와 10만 개 일자리를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타리크 라흐만 총리가 첫 해외 순방지 가운데 중국을 택한 것도 투자와 일자리 확보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
세 나라의 셈법은 다르다. 일본은 산업회랑을 만들고, 중국은 제조와 인프라를 밀어 넣으며, 인도는 북동부의 바닷길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인다.
모두가 방글라데시 안이 아니라 ‘방글라데시 너머’를 보고 있다.
이것이 방글라데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나라의 진짜 자산은 값싼 노동력만도, 1억7000만 명의 내수시장만도 아니다. 인도에 거의 둘러싸인 국토가 남쪽으로 벵골만에 열려 있고, 그 바다가 인도 북동부와 히말라야 내륙, 더 멀리는 동남아시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결의 위치다.
물론 지도에 선을 긋는다고 곧바로 공급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는 아직 전력과 항만·도로, 금융과 행정에서 병목이 크다. IMF는 2027 회계연도 성장률을 3.5%로 낮춰 전망했고 금융권 스트레스와 재정·물가 압력을 경고하고 있다. 2026년 11월 24일로 예정된 최빈개도국(LDC) 졸업 역시 정부의 연기 요청으로 일정 변경 가능성이 남아 있다. 성공해서 주목받는 나라라기보다 기존 성장공식이 한계에 부딪혀 다음 성장모델을 찾아야 하는 나라에 가깝다.
한국의 기회가 생긴다.
일본과 항만 규모로 경쟁하거나 중국과 인프라 자본을 겨룰 이유는 없다. 한국이 잘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산업을 더 정밀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전력기기와 ESS, 스마트팩토리, 물류자동화, 전기전자 조립, 친환경 섬유공정과 산업용 AI는 방글라데시가 지금 넘어야 할 생산성 병목과 직접 맞닿아 있다.
방글라데시의 AX도 실리콘밸리식 AI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정전이 잦은 공장에 AI를 얹는 것은 순서가 뒤집힌 일이다. 전력망을 안정시키고, 공장을 데이터화하고, 항만과 물류를 연결한 뒤 그 위에 AI를 올려야 한다. Grid에서 Factory로, Factory에서 Data로, 마지막에 AI로 올라가는 산업 AX가 방글라데시에는 더 현실적이다.
한국도 CEPA를 관세협정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라면과 자동차를 얼마나 더 팔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큰 질문은 방글라데시에서 생산한 제품이 어떤 항만을 거쳐 어느 시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제조기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와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를 놓고 전력비, 생산성, 통관시간, 항만 접근성, 현지조달률과 정치·금융위험을 품목별로 비교해야 한다. 국가를 추천하는 시대에서 공급망의 최적 위치를 계산하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나는 방글라데시가 곧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업구조도 다르고 주변국 관계와 인프라 조건도 다르다. 오히려 그런 낙관론이 한국 기업에는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중국·인도가 왜 이 나라에 돈과 인프라를 집어넣고 있는지는 분명히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값싼 봉제공장이 아니다. 방글라데시 너머로 열리는 길이다. AI 시대에도 국가경쟁력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이 공장으로 내려가고,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항만을 지나 세계시장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산업이 된다.
한국이 방글라데시에서 찾아야 할 것도 새로운 AI 시장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제조·전력·물류 기술을 벵골만의 길과 연결하는 자리다. 그 길이 실제 공급망으로 열리는 순간, 방글라데시는 더 이상 가난한 의류국가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 그때 들어가서는 늦을 수 있다.
맺음
방글라데시의 진짜 자산은 값싼 노동력보다 인도와 남아시아를 벵골만으로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일본·중국·인도는 이미 항만·산업·물류망을 선점하고 있으며, 한국은 CEPA 이후 제조·전력·물류·산업 AI를 연결하는 Industrial AX Partner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 정유란 발행인]
에디터 mail@k-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