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AI 경쟁이 반도체·전력·데이터센터·공급망으로 확산되는 순간,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커지고 있다

2033년 세계 AI 시장은 4조8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미·중 경쟁을 단순히 거대한 AI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술경쟁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미국은 AI에서 출발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와 광물, 제조로 내려가고 있고, 중국은 광물과 제조에서 시작해 로봇과 산업데이터를 거쳐 AI로 올라오고 있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두 나라가 향하는 종착점은 같다. AI가 산업과 에너지, 공급망과 안보까지 움직이는 국가시스템이다.
미국의 Pax Silica는 이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AI 모델이나 반도체만 묶지 않는다. 핵심광물, 에너지, 첨단제조,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공급망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은 AI 모델과 클라우드, 반도체 설계, 자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제조와 광물 공급망에서는 취약점이 존재한다. 미국계 반도체 기업의 세계 매출 점유율은 2025년 53.4%에 달했지만 미국의 세계 반도체 웨이퍼 제조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중국은 갈륨, 흑연, 텅스텐,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생산과 가공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미국의 전략은 자신이 강한 AI와 자본에 동맹국의 광물·제조·에너지 역량을 결합하는 ‘동맹형 AI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반대 방향에서 움직인다. 2024년 중국에 새로 설치된 산업용 로봇은 약 29만5000대로 세계 신규 설치의 54%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도 200만 대를 넘어섰다. 이 숫자의 의미는 단순한 공장 자동화에 있지 않다. 로봇이 조립하고 운반하고 검사하는 과정에서 현실세계의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이 데이터가 AI를 학습시키며, 더 나은 AI가 다시 제조와 로봇의 생산성을 높인다. 제조가 데이터를 만들고, 데이터가 AI를 학습시키며, AI가 다시 제조를 고도화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AI가 학습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변한다면 미국에는 매우 다른 형태의 위협이 된다.
여기에 에너지까지 연결하면 AI 패권경쟁의 본질은 더 선명해진다. 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AI가 아무리 가상의 디지털 기술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물리적 산업이다. GPU가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AI는 움직이지 않고, 발전소가 있어도 송전망이 부족하면 데이터센터는 돌아가지 않는다. 전력망을 확장하려면 변압기와 케이블이 필요하고, 이를 만들려면 다시 광물이 필요하다. AI에서 시작한 질문이 결국 광산과 발전소, 전력망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이 구조 속에서 대한민국을 보면 기존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라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한국계 반도체 기업의 세계시장 매출 점유율은 2024년 21.1%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이다.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은 1220대로 세계 1위이며, 2025년 세계 조선 신규수주에서도 약 21%를 차지했다. 여기에 자동차와 배터리, 원전과 전력기기, 철강과 방산까지 갖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비해 절대 규모는 작지만, AI가 현실세계로 내려올 때 필요한 첨단 제조자산을 동시에 가진 산업조합은 결코 흔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경쟁전략은 미국과 AI 플랫폼 규모를 정면으로 겨루거나 중국과 제조 규모로 경쟁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다. HBM은 단순한 메모리가 아니라 AI 컴퓨팅 인프라고, 변압기는 전력기기가 아니라 AI 인프라다. 원전은 발전산업이면서 동시에 AI 전력 인프라이고, 조선은 선박 제조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안보를 지탱하는 전략 인프라다. 자동차공장과 조선소, 반도체 Fab 역시 단순한 제조시설이 아니라 Physical AI가 현실세계를 학습하는 데이터 공간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강한 산업이 너무 분리돼 있다는 데 있다. 반도체 정책은 반도체대로, AI 정책은 AI대로, 에너지와 조선, 자동차와 지역산업정책도 서로 다른 체계에서 움직인다. 미국이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에너지, 공급망과 동맹을 연결하고 중국이 제조와 데이터, 로봇, AI를 하나의 순환구조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계속 개별 산업 중심의 정책에 머문다면 세계 AI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제품은 공급하면서도 정작 산업질서와 규칙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주변부에 머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 AX의 핵심 문제라고 본다. 한국의 약점은 기술 부족보다 연결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제조와 Physical AI, 공급망과 외교, 지역산업을 하나의 국가 인텔리전스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미국의 관세가 바뀌고 중국의 핵심광물 정책이 움직일 때 그것이 어느 한국기업과 어느 지역에 영향을 주는지 먼저 읽고, 그 결과를 산업과 투자, 인재와 외교전략으로 연결해야 한다.
외교 역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HBM을 필요로 한다면 한국이 무엇을 확보할 것인지 계산해야 하고, 미국이 한국의 조선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시장접근과 투자, 기술협력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도 모든 산업을 하나의 정치적 기준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안보와 기술 중요도에 따라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결국 앞으로의 외교는 관계관리만이 아니라 산업과 공급망의 가치를 계산하는 지능형 외교가 되어야 한다.
이번 미·중 AI 패권경쟁을 보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어느 나라가 먼저 AGI에 도달할 것인가가 아니다. 미국은 AI에서 광물로 내려가고 있고 중국은 제조에서 AI로 올라오고 있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통해 AI가 국가 전체의 산업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AI 모델 몇 개를 더 만드는 데 국가전략을 한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이미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원전과 전력기기,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현장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이미 세계적인 것들을 서로 연결해 대한민국만의 국가 AX 구조로 만드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AI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I 모델의 성능이나 GPU 보유량만 볼 것이 아니라, 반도체와 전력, 제조와 로봇, 물류와 공급망, 외교와 지역산업을 얼마나 하나의 국가시스템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미국은 자신에게 부족한 제조와 광물을 동맹으로 연결하고 있다. 중국은 자신이 가진 제조와 데이터를 AI에 연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도 결국 같다. 우리가 가진 것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만의 AX 국가전략을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본다. (글: 편집국 데스크)
사실근거 및 출처
본 칼럼은 UNCTAD의 AI 시장 전망, 미국 백악관·상무부의 AI·반도체 정책, USGS의 핵심광물 통계, IFR의 산업용 로봇 데이터, IEA의 데이터센터 전력 전망, SIA의 반도체 산업 통계, Clarksons의 조선 수주자료 등을 사실근거로 활용했다. 또한 대한민국 외교부의 Pax Silica 관련 자료와 MarketHub WCI 미국편을 통해 한미 공급망·산업구조와 대한민국의 전략적 영향을 교차 분석했다.














